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창립선언문

1988년 12월 23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우리는 현 단계 민중적 민족예술운동의 과제가 민족현실의 극복에 우선적으로 모아져야 함을 재삼 확인하면서, 뜻있는 예술인들의 마음을 모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창립을 선언하고자 한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민족해방투쟁이라는 위대한 근대사적 과업을 수행하여 왔으며, 우리는 길고 긴 식민지의 어둠과 압박의 시대를 지나 그보다 더욱 긴 세월을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의 현대사 속에서 보내왔다. 이러한 길고 어려운 고난의 시대를 거치면서 언제나 싸움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은 바로 이 땅의 이름 없는 민중이었으며 그들은 대지처럼 묵묵히 강물처럼 도도하게 우리 역사의 주체로서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동시대의 예술가를 낳아준 당사자이며 창조된 예술작품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일제와 민족분단의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일차적인 임무를 저버렸으며 창작물은 제국주의와 그 추종세력과 결탁한 독점자본을 위하여 사용되거나 점유당하였다.

지나간 ‘4월’ 과 ‘5월’에서 ‘6월’까지 이르는 당대 민족사의 흐름은,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독재정원을 내세워서 신식민지적 질서를 정착시켜 왔고, 그 심화된 기초 위에서 분단 고착화 내지는 예속화 정책을 추진하던 외세와 반민족적 세력에 대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민중의 항쟁이 시작된 시기를 상징한다. 우리는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과,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벗어나 나라의 자주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며,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해야한 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서있다.

우리는 분단 시대 한국 사회 모순의 총화가 바로 지금 민중의 삶의 현실로 구체화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의 염원과 세계관에 뿌리내린 예술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민족예술임을 함께 확인하였다. 이러한 예술품의 생산과 예술운동의 실천은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한 우리 민중의 투쟁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길이며 자주와 평화를 추구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세계의 민족해방운동과 더불어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멀리 반제 반봉건의 깃발 아래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근대화를 준비해 왔던 조선조의 민중운동과 민중예술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가깝게는 일제하의 민족해방운동으로서의 예술운동과 분단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민족문화운동의 유산들을 비판 수렴하여, 통일된 그 땅에도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민족예술의 건설을 위하여 모였다.

이제 예술운동은 전체 민족운동 선상에서 스스로의 예술이념과 미학 그리고 실천론으로 자신의 전선을 감당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예술가가 민중의 올바른 삶에 대한 열망과 요구를 짊어지고 전선에 나선다는 것은 과감한 자기 변신을 통하여 일정한 규율과 조직의 틀을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의를 토대로 자립하여 각개 예술 분야를 연결하고 협력하며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민중의 모든 문화적 권리를 쟁취해 나가야한 한다.

민족문학은 우리나라 문학의 위대한 전통의 진정한 상속자로서 세게문학의 진보적 흐름에 당당히 참여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통일을 이루려는 민중과 한몸이 되어 헌신할 것을 하늘을 우러러 새롭게 다짐한다.

민족미술이 나아갈 길은 민족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삶을 실현하는, 그리고 그 역량에 기초하는 현실주의 미술의 실현이다. 민족 민중 예술운동에 있어서의 미술운동은 전문예술가의 기량과 유산을 민중의 입장에 서서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것과, 민중의 생활과 문화적 향상을 위하여 미술의 대중적 보급과 대중의 자주적 미술역량의 발전을 돕는 양면성을 상호, 침투시키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전통사회에서의 민중연희 전통을 되살리고 일제 이후 자주독립 투쟁의 연행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의 민족극운동은 혼미해진 우리 연극의 정통성을 되찾는 자기회복운동이다. 아울러 그것은 민중의 삶의 현실 욕구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창출된 것이면서 또한 오늘날 민중의 삶의 현실 지평위에서 또다시 새로운 세계로의 전망을 창출해 나가야 할 현재진행형의 운동이기도 하다.

민족음악운동은 기존 음악계의 보수성, 배타성, 파당성 등을 극복하여 음악계 내부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며 국악 양악 대중음악 등으로 갈라진 음악계를 올바른 민족음악의 관점에서 화해 통일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민족음악의 창작을 위해 기존의 음악적 유산속에 존재하는 귀중한 부분을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로 섭취하여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우리 민족의 자주화와 평화적 통일에 대한 염원을 여러 종류의 음악적 실천으로 담아낼 것이며, 또한 음악이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건강하게 뿌리내리도록 할 것이다.

우리 영화예술은 그간 영화매체가 대중에 의해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또 큰 자본을 필요로 한다는 특성 때문에 일제와 군사독재에 의해 탄압받고 매판자본에 유린당하는 기나긴 굴욕과 회한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영화에 대한 부당한 국가권력의 간섭과 자본의 횡포를 조직적으로 극복해 나가고자 하며 낡은 영화제도와 영화문화를 허물고 민족적인 영화제도와 영화문화를 건설하여 한다. 민중의 삶의 편에 굳게 서서 참된 영화예술을 꽃피우는데 정열을 바칠 것이다.

민족춤운동은 체제순응주의, 파벌성, 무사안일 뿐만아니라 비리와 악습을 일소하여 민족사에 적극 이바지하고자 한다. 민족춤은 개인의 뼈를 깎는 노력과 동시에 뜻있는 모든 집단의 헌신적 동참을 요구한다. 민족춤은 민족사 속에서 맥동쳤던 건강한 것으로서 어제·오늘·내일 이 땅의 참된 주체인 민중의 혼과 넋이 맥동치는 것이며 우리는 민중의 해방과 민족통일을 위한 뜨거운 몸짓을 모아 이 땅의 민중에게 겸허하게 바쳐야 한다. 이제 우리는 춤교육일반의 개선, 창작 풍토의 혁신, 과학적 정론의 성립을 통하여서만 민족춤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화합, 격려 그리고 대화로서 민족춤 재건의 역사적 과업에 임하여, 춤의 대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하고 역사의 부름에 당당히 응할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건축문화의 생산주체로서 자주적 이념과 철학을 배양하여 우리의 땅에 뿌리받은 진정한 건축문화의 창달을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 우리는 주거도시, 환경문제가 건축인의 중심적 실천 영역임을 자각하고 일반 대중을 위한 건축적 사횢거 해결과정에서 적극 앞선다. 우리는 지금 사회제도의 비민주성과 행정만능, 관료적 권위주의가 건축문화의 발전과 창조성을 제약해 왔음을 직시하고 이들의 개혁을 위해 적극 행동한다.

우리 사진예술이 나가야 할 좌표는 민중·민족의 과거·현재·미래와 연관된 모든 사물과 상황의 충실한 증언자가 되는 길이다. 따라서 기존의 예술지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사진풍토, 외세추종적 사진예술의 풍토를 과감히 척결하고 사진예술의 현실주의 회복을 위한 치열하고 진지한 작업에 총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민중과 확고히 결합된 투쟁의 현장에서, 우리는 대중성이 무엇이고 운동성이 무엇이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생생하게 자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민중의 정서, 민중의 미의식을 배우고 민족민주운동, 통일조국건설운동의 대의를 체현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음으로써 소수의 예술가만이 아니라 민중 전체가 보다 높은 예술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참 민중적 민족문화예술의 기틀을 건설해낼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예술운동에 대한 조직적인 자각과 실천의지를 대동 통일하고 민중의 엄숙한 소명을 받아 이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창립을 선언한다.

 

남북 예술인과 해외동포 예술인 여러분!

이 땅을 뒤덮은 예속과 독재의 어둠을 걷어낼 자주 민주 통일의 횃불을 밝혀 들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더불어 단결하여 전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