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위-논평] 시장이 외면한 <사회적 예술>, 공공의 책임 있는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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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 주간 논평]
시장이 외면한 <사회적 예술>, 공공의 책임 있는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예술이 없는 삶은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와 같다. 누구나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본능적으로 동의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는 그 가치를 측정하고 보상하는 방식에서 지독한 오작동을 반복하고 있다. 예술을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소비재로 치부하는 순간, 사회적 소통과 연대라는 예술 본연의 공공적 가치는 휘발된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예술이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왜곡한 예술 생태계
자본주의적 시각은 모든 가치의 척도를 시장 가격과 흥행으로 수렴시킨다. 오늘날의 예술 시장은 거대한 자본력과 인지도가 지배하는 승자독식 구조로 전락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의 소득 분포는 극단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나타낸다. 예술 활동으로 인한 연 수입이 없거나 500만 원 미만인 예술인이 전체의 절반을 상회하는 반면, 극소수의 상위 예술가가 시장 매출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소수의 유행 상품이 이익과 대중의 관심을 독점하는 구조 속에서는 오직 대박 상품의 가치만이 과대평가된다. 반면 지역 공동체를 치유하거나 사회적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예술인들의 실천은 경제적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시장의 평가는 예술의 본질이 아닌 자본의 효율성만을 반영할 뿐이며, 이러한 편향된 대가 지불 구조는 결국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고 있다.
- 불편함을 주는 <사회적 예술>의 소외와 그 본질적 가치
우리가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영역은 바로 <사회적 예술>이다. 이는 단순히 사회 문제를 감각적으로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권력과 자본, 제도와 관행의 모순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발하는 예술적 실천이다. 사회적 예술은 본질적으로 현실과 불화하며 공동체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대중과의 서걱거리는 거리감을 만들고, 때로는 외면으로 이어져 예술적 입지를 축소시킨다. 달콤하고 감각적인 자극만을 소비하려는 시장 구조 속에서 비판적 예술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시장에서 밀려나는 사회적 예술에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야말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거울이자 건강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을 지키는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국의 공공 예술 지원 기구인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는 예술의 가치를 단순 티켓 판매량이나 수익성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이들은 예술이 지닌 사회적 활력, 시민적 연대, 소외 계층의 참여 유도 등 <사회적 임팩트(Social Impact)>를 다각도로 지표화하여 공공 자금을 지원한다. 예술이 던지는 비판과 성찰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필수재임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 <사회적 예술> 지원은 시혜가 아닌 공공의 책무
사회적 예술이 만들어내는 연대감과 비판적 성찰 역시 공적 필요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어야 하는 재화다. 전쟁과 갈등, 약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건강한 사유를 던지는 예술적 실천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내어놓는 예술인들의 실천은 민주화·노동·통일·생명평화운동 등 우리 현대사의 격동하는 현실 속에서 오늘도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
그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예술행정기관에서 사회적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을 논의해 왔으나, 온전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 <블랙리스트 사태>처럼 공공지원체계에서 외면하고 배제하는 야만의 역사를 겪기도 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체계는 예술의 비판적 성격이나 불편함을 달래기 위한 단순한 시혜적 보상이어서는 안 된다.
시장에서 환영받기 어려운 사회적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은, 예술이 사회적 연대와 성찰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당연한 공공의 책무다. 이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국가가 지불해야 할 정당한 조달 비용이자, 예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 <사회적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주지하다시피 예술인 대다수는 예술 활동만으로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특히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사회적 실천을 이어가는 예술인들의 삶은 고립과 빈곤의 연속이다. 이제 이들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공공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예술인의 사회적 기여를 공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예술 활동 지원>, <사회적 가치 보상제>, <예술인 참여소득> 등의 제도를 즉각 검토하고 도입해야 한다. 예술인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에 공공이 정당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사회적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상품의 판매량으로만 재단할 수 없다. 전통예술이나 기초예술만큼이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영역이 바로 사회적 예술이다. 정부와 관계 기관에 강력히 요구한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 척도를 재구성하고, 사회적 예술에 대한 제도적 논의를 당장 시작하라. 시대의 현실과 함께 고뇌하며 역동해온 사회적 예술을 위해, 이제 공공 지원 체계의 새로운 물길을 열어야 할 때다.
2026년 7월 6일
한국민예총 정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