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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 논평] 전국예술제의 관성적 경연 체제, 이대로 지속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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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6회 작성일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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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예총 정책위-논평]
전국예술제의 관성적 경연 체제, 이대로 지속 가능한가
분권 시대, 지역 예술생태계 정책으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 국가주도 공모·심사형 예술제도의 역사적 관성과 문화권력 재생산
한국의 공모·심사형 예술제도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창설한 조선미술전람회(선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전은 3·1운동 이후 일제가 실시한 ‘문화통치’의 핵심 장치로, 공모와 심사, 입선과 특선이라는 제도를 통해 식민 권력이 승인하는 미술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해방 이후 1949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역시 신진 작가 발굴이라는 명분 뒤로 선전의 관전(官展)적 제도 틀을 고스란히 계승하며 국가가 승인하는 예술의 위계를 생산했다.

특히 냉전기 아시아재단(미 CIA 소유)이 민족문화유산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동맹군’으로 인식했던 전략과 맞물리며, 이 제도들은 ‘순수예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미신과 결탁하였다. 예술의 정치성과 역사성을 지워버린 채 통치 기제로 작동한 이 방식은 민주주의와 진보를 지향하는 예술계 전반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렸고, 오늘날까지도 지역 현장에 동료 예술인을 색깔론으로 지칭하는 해묵은 권위주의의 상흔을 남겼다. 화단 파벌화와 획일적 아카데미즘의 폐해로 국전은 1981년 폐지되었으나, 그 구조적 유전자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해 전국연극제, 전국무용제 등 ‘전국대회’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관성적 체제는 과거의 권력 구조를 장르별 중앙협회와 지역 지회로 이양했을 뿐이다. 지역 선발을 전제로 하는 공식 전국대회는 특정 기성 예술단체에 공적 권위와 상징자본을 부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문화예술 예산과 행사 운영권을 독점하는 순환구조를 고착화한다. 이로 인해 비회원·독립 예술인은 철저히 소외되며, 신진 예술가들 또한 안정적인 예산과 조직을 가진 기득권 단체에 종속되어 지역 예술생태계의 다양성과 자생력은 고사하고 있다.

○ ‘수월성’의 함정에서 벗어나 ‘예술인’의 권리 보장으로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보조금 기반의 연례적 경연·시상 체제를 유지하며 이 낡은 구조를 사실상 방치해왔다. 기득권 협단체가 정하는 기준에 맞추어 예술인을 서열화하고 ‘줄 세우기’하는 방식은, 기존 체제와 끊임없이 불화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예술 고유의 역동성을 훼손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전국예술제가 시민참여 프로그램, 국제교류, 청년 지원 등 비경연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질적 향상이나 '수월성(Excellence)'을 확보하고 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보완 프로그램의 존재가 기존의 폐쇄적인 대표 선발·경연 체제를 지속해야 할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경연대회라는 틀이 없더라도 시민참여나 작품 유통, 청년 지원 등은 독립적이고 다양한 문화예술정책을 통해 충분히,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앙의 권한을 지역의 기득권 협단체에 이양해온 '무늬만 분권'을 극복하는 일이다. 지역의 시민과 다양한 창작 주체가 자원 배분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누구든 예술을 창작하고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문화예술계 권력의 분산’이 절실하다. 낡고 관성적인 지역의 문화예술 권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예산만 늘려 골고루 나누어주겠다는 식의 안이한 탕평책으로는 결코 지역예술생태계를 바꿀 수 없다.

○ 공공 사용자성 부정을 방조하는 시스템의 문제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부, 지자체, 공공 문화재단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공공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회피한다는 점이다. 공공은 지역 예술인의 창작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 안정적인 현장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간접 고용주(사용자)’로서의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닌다.

그러나 현 시스템은 막대한 공공 예산을 특정 민간 협단체에 보조금 형태로 통째로 위탁함으로써, 자신들이 져야 할 행정적·노동법적 책임을 민간 단체의 그늘 뒤로 숨겨버린다. 예산 처리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협단체 역시 현장 예술인들을 대등한 파트너가 아닌 '단기 동원 인력'이나 '경연 참가자'로 취급하기 일쑤다. 결과적으로 공공은 책임을 면피하고, 권력을 승인받은 협단체는 관행적 행사를 지속하며, 실제 독립·신진 예술가들은 불안정한 구조와 권리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 단순한 비판을 넘어: 문화권력 독점에서 오픈 플랫폼으로의 전환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짚어내는 목적은 단순히 특정 단체를 배척하거나 고립시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민간 협단체는 문화예술생태계에서 중요한 주체로서 그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 하겠다. 기득권에 대한 젊은 예술인들과 현장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심사권과 선발권을 무기로 군림하는 권력 기구’에서 탈피하여 예술 현장의 노동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신뢰받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는 더 이상 민간 단체를 방패막이 삼아 공공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책임을 눈감아서는 안 된다. 그 대표적인 방조와 관행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경연방식 전국예술제 지원 사업이다. 과거에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답습해 온 문화예술 보조금 체계의 효용성을 이제는 근본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은 전국예술제라는 낡은 틀을 유지하는 것보다, ‘지역 예술생태계를 주체적으로 성장시키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전환해야 할 때다.

예술계 내부의 권력 독점과 줄 세우기식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예술인과 시민의 주체적인 문화 실천이 함께 숨 쉬는 오픈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인적·구조적 성찰과 청산 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현장 예술인들의 신뢰에 기반한 건강한 문화예술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2026. 7. 20.
한국민예총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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