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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 논평] 현장과 소통없는 개편, 산업 논리에 잠식된 예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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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5회 작성일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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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예총 정책위 – 논평]

현장과 소통없는 개편, 산업 논리에 잠식된 예술정책 

— 문체부 공공기관 통폐합을 비판한다


지난 9월 3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중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18곳을 7곳으로 통합·재편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정부는 고강도 공공기관 구조조정으로 지역문화진흥원을 비롯한 몇몇 기관은 '한국문화진흥원(가칭)'으로 하나로 묶이고, 예술경영지원센터와 몇개의 기관은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가칭)'으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공예본부·디자인본부·문화역284팀은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가칭)'으로 전통문화본부·한복센터는 '한국문화진흥원(가칭)'으로 나눠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두고 "유사·중복 기능의 비효율을 해소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절차, 방향, 내용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 예술현장과의 숙의 없는 탑다운식 발표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방식의 문제다. 이번 통폐합안은 국무총리실 주관하에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재정경제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의 일부로 발표됐다. 발전 공기업, 통계 관련 기관, 의료산업진흥재단 등 문화예술과 무관한 100여 개 기관 구조조정과 한데 묶여 하나의 패키지로 처리된 것이다. 문화예술 공공기관은 일반 산업·행정 기관과 성격이 다르다. 이들 기관이 수행하는 업무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 효율화' 대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지원 체계, 현장과의 신뢰 관계, 특정 예술 장르·지역 공동체와의 유기적 연결망을 매개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개편은 예술계 당사자와의 사전 협의나 공청회,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정부 발표 당일에 그 내용을 공개했다.

이는 과거 문화예술계가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힘겹게 요구하고 쟁취해 온 원칙, 즉 "정책은 현장과의 소통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최소한의 합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통폐합 대상이 된 기관들의 임직원은 물론, 이들 기관의 지원을 받아 활동해 온 지역 예술인, 전통예술 단체, 문화예술교육 강사들조차 자신들의 활동 기반이 통째로 재편된다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해야 했다. 조직 개편의 정당성은 효율성 수치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누가, 어떤 논리로,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했는가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발표는 '내용'에 앞서 '절차'에서부터 이미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2. 산업진흥 프레임으로 수렴되는 국가주도 문화예술정책

두 번째 문제는 이번 개편의 방향성이다. 통폐합의 명분은 표면적으로 '중복 해소'와 '경영 효율화'지만, 그 실질은 문화예술 지원체계를 산업진흥과 경쟁력 강화라는 틀 안으로 재배치하는데 가깝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예본부·디자인본부·문화역284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국립문화공간재단을 묶어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그 명칭에서부터 방향을 드러낸다. 예술 '경영'과 '지원'의 기능이 '산업'이라는 카테고리 아래로 흡수되는 것이다.

문화예술정책이 산업적 성과, 즉 수출·부가가치·일자리 창출 같은 지표로 환원되기 시작하면, 그 논리 안에서 우선순위를 인정받는 것은 시장성 있는 콘텐츠와 '한류'로 대표되는 수출 가능한 문화상품이다. 반면 당장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실험적 예술, 비주류 장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은 지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더구나 이런 기관들이 대형화·단일화되면 정책 결정권은 소수의 상급 조직으로 집중되고, 문체부의 하향식 통제력은 오히려 강화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효율화'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국가가 문화예술의 방향을 산업 논리로 재단하고 관료체제를 강화하여 예술현장을 통제하는 구조가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 지원의 원칙으로 오랫동안 강조되어 온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 즉 정부가 예술 활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과도 배치된다.


3. 이질적 영역의 강제 통합이 초래하는 예술생태계 다양성의 훼손

세 번째로,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심각한 문제는 통합 대상 기관들의 성격이 서로 판이하다는 점이다. 이번 안에 따르면 지역문화진흥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전통문화본부·한복센터), 한국문화정보원이 '한국문화진흥원' 하나로 합쳐진다. 이 네 기관은 각각 풀뿌리 지역문화 활성화, 학교·사회 문화예술교육, 전통공예 및 한복문화 진흥, 문화정보화라는 전혀 다른 정책 영역과 전문성, 현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지역문화진흥원이 담당해 온 지역 문화재단·생활문화센터 지원 업무는 각 지역의 특수성과 주민 참여형 문화활동, 즉 시장 논리로 환산되기 어려운 '사회적 예술'과 공동체 문화의 영역이다.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업무는 아동·청소년·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적 접근을 필요로 하며, 전통예술·공예 진흥은 또 그 나름의 전승 체계와 장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정책 영역을 하나의 조직 안에 밀어 넣으면, 각 영역이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과 예산, 정책적 관심은 조직 내부의 자원 배분 경쟁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조직이 커질수록 의사결정 단계는 늘어나고, 지역과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기까지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진다.

결과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행정 효율'을 명분으로 예술생태계의 다양성이 위축되는 현상이다. 서로 다른 존재 이유와 지원 논리를 가진 영역들이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뭉뚱그려지면, 소수 장르·비주류 예술·지역 기반 활동처럼 규모는 작지만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탱해 온 영역부터 존재감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예술 지원체계의 본질은 '얼마나 적은 조직으로 운영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창작과 활동을 촘촘히 뒷받침하는가'에 있다는 점에서, 이번 통합안은 그 근본 목적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이번 개편안에서 반복되는 ‘진흥원’이라는 명칭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진흥’은 행정이 특정 분야를 육성·촉진한다는 의미를 갖지만, 문화예술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문화를 일방적으로 진흥하는 데 있지 않다. 문화예술정책은 예술현장의 자율성, 지역문화의 다양성, 시민의 문화권을 보장하는 공공적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지역문화, 문화예술교육, 전통문화, 문화정보를 ‘한국문화진흥원’이라는 이름 아래 묶고, 예술경영·공예·디자인·문화공간 운영을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이라는 이름 아래 재편하는 것은 문화예술을 행정적 육성 대상이나 산업적 성과 대상으로 좁혀 이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문제는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그 명칭이 드러내는 정책 철학이다."


마치며

문화예술 기관 구조조정 계획은 전면적으로 재논의되어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은 위 기관들의 설치 근거가 되는 관련 법령에 대한 개정이 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예술계의 폭넓은 논의에 기반해 제정되고 개정되어온 법령을 무시하고 정부 계획만으로 추진하려는 것은 오만한 권력 의지를 만용하는 행태에 불과하다. 지난 윤석열정부에서 국립 문화예술기관의 행정을 합리화하겠다며 재단 설립을 밀어부쳤다가 결국 당인리문화발전소 사업만 하고 있는 국립문화공간재단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한다. 

이번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정부는 "유사 기능의 비효율을 해소하는 합리화 조치"로 설명한다. 실제로 유사 업무가 여러 기관에 분산돼 관리비용이 늘어난 측면이 있다면, 이를 정비할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정비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당사자인 예술현장과의 실질적 숙의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 통합이 각 영역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는 이 두 조건 어느 쪽도 충족하지 못한 채, 산업적 효율성이라는 단일 잣대로 문화예술의 다층적 생태계를 재단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2026년 9월 7일

한국민예총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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